BOOK · 리뷰
눈이 덮인 세상을 다녀오다
2018-04-27
저자
출판사
리뷰자 권덕은 님(고양시인문학모임 '귀가쫑긋' 회원)

군마현에서 니가타현으로, 눈이 없는 세상에서 눈으로 덮인 세상으로, 눈의 고장 유자와를 향해 긴 터널을 통과했다. 주인공 시마무라가 빠져나온, 13킬로미터의 시미즈 터널은 아니었지만 터널 속에서 계속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 끝에는 눈보라가 퍼붓는 새하얀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 환상의 세계를 상상하고 그리워하며 꼬박 1년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예상과는 달리 유자와는 3월의 봄날을 뚝 떼어놓은 듯 따스했다. 마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키 높은 눈둑들마저 새하얀 이불솜처럼 포근해보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 주었다는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작년 겨울이었다. 주인공이 찾은 여행지가 잊고 있던 기억 한 조각을 꺼내어 주는 바람에 책을 읽은 후 혼자 겨울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었던 경험으로 산문을 쓴 적이 있다. 물론 ‘설국’의 작가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여운이 가득한 글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줄거리를 파악하려 애쓰며 읽는데 사건이 개연성 있게 전개되는 소설이 아니어서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입에 감기는 커피 맛과 향처럼 깊은 여운이 남아 산문을 쓴 직후 홀린 듯 다시 책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유자와로 떠나기 직전에 다시 이 책을 꺼냈을 때는 대화와 행동 사이로 치밀하게 깔린 인물들의 감정에 깊이 동화가 되었다. 산에 끌리면서도 등산을 하는 것조차 헛수고로 여기고, 그러면서도 그런 행위에 비현실적인 매력을 느끼는 시마무라가 되었다가, 영롱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요코가 되었다가, 선생 아들의 요양비를 대기 위해 게이샤로 나선 고마코가 되었다가... 나는 떠나기도 전에 눈바지를 입고 설국을 누비는 사람이 되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등장인물이 셋. 이야기는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 속도를 내며 전개되는 방식이 아니다. 작가는 순간순간 인물들의 상황을 보여줄 뿐이다. 덕분에 특이하게도 그들이 지닌 내력보다는 인물의 시각적 이미지와 그들이 품은 감정이 먼저 내 머릿속에 입체감 있게 그려졌다. 먼저 등장인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할까 한다.


서양의 인쇄물에 의지하여 서양무용에 대해 글을 쓰는 것만큼 편한 일은 없었다. 보지 못한 무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이보다 더한 탁상공론이 없고 거의 천국의 시(詩)에 가깝다. 연구라 해도 무용가의 살아 움직이는 육체가 춤추는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의 상상으로 서양의 언어나 사진에서 떠오르는 그 자신의 공상이 춤추는 환영을 감상하는 것이다. 겪어보지 못한 사랑에 동경심을 품는 것과 흡사하다. 그런데도 가끔 서양무용 소개 따위를 쓴답시고 문필가 말단에 끼였고, 그런 자신을 스스로 냉소하면서도 이렇다 할 직업이 없는 그에게 심리적 위안이 되는 면도 없지 않았다.
 

시마무라의 현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모님께 받은 유산으로 무위도식하고, 언제나 허무를 느끼며 살아가는 시마무라. 그의 도쿄생활이 궁금하지만 알 수 없다. 이 대목 또한 유자와에서 고마코를 만나 춤 이야기가 통하는 과정에서 슬쩍 드러날 뿐이니. 계절을 달리하여 유자와에 세 번 방문하지만 방문과 방문의 사이 주인공이 견뎠을 현실에 대하여 작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비현실의 세계, 유자와라는 여행지에 머물러 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렇듯 현실 너머의 세계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이런 날은 소리가 달라요.”
자신도 모르게 늘 산골짜기의 드넓은 자연을 상대로 고독하게 연습하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었던 탓에, 발목 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고독은 애수를 짓밟고 야성의 의지력을 품고 있었다. 다소 소질은 있다 하더라도 복잡한 곡을 악보로 독학해서 악보를 보지 않고서도 자유자재로 켤 수 있게 되기까지는 강한 의지로 노력을 거듭했음에 틀림없다.
시마무라에겐 덧없는 헛수고로 여겨지고 먼 동경이라고 애처로워도 지는 고마코의 삶의 자세가 그녀 자신에게는 가치로서 꿋꿋하게 발목 소리에 넘쳐나는 것이리라.


샤미센을 연주한 여자는 시마무라가 이 지역에서 처음 만난 여자, 고마코다. 그녀는 따스하고 뜨겁다. 그저 여행자일 뿐인 시마무라를 사랑하지만 기대지 않고, 별 볼일 없는 소설을 읽고 기록을 남기며 매일 일기를 쓰는, 산골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꼿꼿이 살아가는 여자.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대화는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이어져 어느 대목에서건 애틋함을 품고 있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고마코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 닿았다. 그는 고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웠다. 이러한 모습을 무심코 꿰뚫어 보는, 빛을 닮은 눈이 요코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


고마코가 뜨겁고 열정적인 이미지라면,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요코는 순수하고 진지하며 차갑고 처연한 이미지다. 춤 선생의 아들을 두고 이 둘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이 있어났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작가는 인물들의 말이나 행동을 통하여 그들의 심리를 짐작하게 하고, 그들의 관계를 추측하게 할 뿐이다. 이들의 진지한 삶의 모습은 살아가는 일에 언제나 허무를 느끼는 시마무라의 시선과 대비가 되면서 더욱 더 인간으로서 지닌 강렬한 생명력과 더불어 이 고장에 쌓인 눈의 고요와도 같은 순수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그런데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소설의 배경으로 왜 유자와를, 그리고 다카한 료칸를 선택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궁금했다. 어찌 보면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나는 유자와에 온 셈이다. 지금의 다카한 료칸은 작가가 머물던 건물 자리에 신축한 건물이지만 제 몸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료칸의 1층에는 설국 문학관이 있었다. 작가가 묵으며 설국을 집필한 가스미노마(안개의 방)실을 그대로 살려 두었고, 소설에 나오는 당시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장면은 2월 14일이면 아이들을 위해 마을에서 열렸다는 새쫒기 축제와 지붕에 쌓인 눈을 도로로 던져 생긴 눈둑 사이를 뚫어 만든 눈터널 태내(胎內)의 모습이었다. 문학관에서 사진 자료로 만날 수 있어 이해가 쉬웠다. 여주인공 고마코의 실제 모델인 ‘미쓰에’라는 게이샤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상상한 고마코의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묘한 매력에 끌려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작가가 3년이나 이곳에 머물렀던 이유는 베란다 쪽의 격자문을 열었을 때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나를 압도하고 탄성을 지르게 만들던 풍경. 시마무라가 자연을 조망하던 곳, 술에 취한 고마코가 한밤중에 창을 열고 몸을 기대어 차가운 바람을 맞던 곳. 안개에 휩싸인 신비스런 설산과 푸른 삼나무숲, 간간이 기차가 몸을 울리며 지나가는 기찻길, 산으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저 아래로 보이는 작은 마을... 풍광의 바닥은 때론 청빛을, 때론 갈색빛을, 때론 순백의 흰빛을 띄며 시간과 햇빛의 조화 속에서 습도와 온도의 변화에 따라, 바람의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내가 선 이 자리에서 80여 년 전에 향했을 작가의 시선은 시마무라의 시선으로 그대로 옮겨져 ‘설국’에서 아름다운 언어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리라.
 

‘플랫폼에는 들어가지 않을래요. 안녕.’ 하고 고마코는 대합실 안 창가에 서 있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기차 안에서 바라보니까 초라한 한촌(寒村) 과일 가게의 뿌연 유리상자 속에 이상한 과일이 달랑 하나 잊혀진 채 남은 것 같았다. 기차가 움직이자 대합실 유리가 빛나고 고마코의 얼굴은 그 빛 속에 확 타오르는가 싶더니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눈 온 아침의 거울 속에서와 똑같은 새빨간 뺨이었다. 시마무라에게는 또 한 번 현실과의 이별을 알리는 색이었다.


마을은 설국의 배경지로 유명한 고장답게 곳곳에 설국의 흔적이 있었다. 유자와의 민속박물관인 설국관이 있고, 소설의 첫 문장을 적은 설국비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스키장도, 그리고 고마코의 이름을 딴 온천장도 있었다. 그러나 소설 때문에 마을이 문학마을처럼 조성된 것이 아니라, 소설속의 그 마을을 귀하게 여기며 지금까지 잘 보존해 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 보여 좋았다. 

유자와역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은 고즈넉했다. 소설이 발표된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설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아담한 건물과 촉촉한 공기가 매우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시마무라도 이 역에서 내려 마을의 깨끗한 분위기를 느꼈을 테고, 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도쿄로 돌아갔을 테지. 유자와로 오는 기차 안에서 보는 현실과 비현실이 이중노출로 겹치는 듯 묘했던 유리창의 풍경, 도쿄로 돌아가는 기찻길 풍경의 묘사는 현실에서 비현실의 세계로, 그리고 비현실에서 현실의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가운데의 놓인 긴 터널은 그 관문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플랫폼에서 서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적이 있는가? 이상한 과일 모습으로 잊혀진 듯 남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없더라도 기차소리는 누군가를 그립게 만드는 이상한 울림이 있다. 끊임없이 온천수가 흘러 청량한 물소리를 들려주는 깨끗하고 고요한 눈 세상에 머무는 동안 종일 내 귀를 사로잡던 다른 소리가 있었다. 기차소리.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상한 과일로 잊혀진 채 플랫폼에 덩그러니 남곤 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저 소리는 시마무라가 떠나고 나면 성실하게 살 거라고 말하던, 흰 눈 속에서 새빨간 뺨이 도드라지곤 하던 고마코의 마음일 테지. 그리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이기도 할 테지.


그는 곤충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듯 자연도 스러지고 마는 조용한 죽음이었으나, 다가가보면 다리나 촉각을 떨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시마무라는 죽은 곤충들을 버리려 손가락으로 주우며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을 문득 떠올리기도 했다. 창문 철망에 오래도록 앉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이미 죽은 채 가랑잎처럼 부서지는 나방도 있었다. 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도 있었다. 손에 쥐고서,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가 하고 시마무라는 생각했다.


시마무라는 산허리에 억새꽃이 눈부신 은빛으로 흔들리는 어느 가을날, 마지막으로 다시 산골을 방문한다. 그리고 단풍 깊어진 산에 첫눈이 선명하게 내려앉을 때까지 도쿄를 잊어버린 듯 오래 머물게 된다. 여행지에서 그가 하는 일이란 대략 위와 같은 관찰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 어쩌면 아름다운 요코가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하게 되는 결말의 복선은 아닐까? 자연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운명 또한 곤충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음을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길은 계속 번져 엉뚱한 곳에서 불꽃이 생겼다. 석 대의 물펌프로 허둥지둥 끄려고 하면 일시에 불똥이 치솟고 검은 연기가 일었다. 불똥은 은하수 속으로 퍼져나가며 흩어져 시마무라는 또 한 번 은하수 쪽으로 끌어올려지는 느낌이었다. 연기가 은하수로 흐르는 것과 반대로 , 은하수가 쏴아 하고 흘러 내려왔다.
(중략)
발 끝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든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에게 스며들었다.


산골 마을이 지닌 순수한 흰 눈 이미지는 사람에 의해 생긴 붉은 불꽃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강렬해지고, 지상으로 내려온 은하수와 만나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소설은 끝난다.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은하수가 시마무라에게 스며들었다... 마지막에 자연과 합일된 것으로 보이는 시마무라에게 이제 고마코와 요코의 뜨겁고 순수한 사랑은, 그들의 진지한 삶의 자세는 여전히 자연 의 흐름 앞에선 아무 소용없는 애틋한 헛수고로 보일까? 이후 그의 삶은, 그가 만난 아름다운 것들은 허무라는 가벼운 무게를 여전히 지고 있을까? 시마무라는 눈의 고장, 설국을 다시 찾아올까? 나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다. 아니 어린 시절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을 겪으면서 지니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허무의 색채가 설국의 집필을 끝낸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는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나는 묻고 싶은 것이다.

문학기행을 추진하신 교수님은 설국의 주인공은 눈으로 된 세상, 유자와라고 말씀하셨다. 마을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라...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분명 여운이 넘쳐 다시 읽은 소설임에도 그 여운이 무엇에서 오는 것인지 또렷하지가 않았는데, 드디어 실체를 마주한 것 같았다.

아름다움, 순수한 사랑 같은 것은 언제나 현실 세계 너머에 존재한다.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지만 우리는 순수하고 절대적 아름다움이 넘치는 또 다른 세계를 언제나 동경하지 않는가? 작가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여행객이라는 이방인이 되어서야 아름다운 마을 유자와에서 비로소 만났을 것이고, 그가 추구하는 것들에 대하여 소설 안으로 이 마을을 끌어들여 담아냈으리라. 

돌아오자마자 다시 ‘설국’을 읽었다. 작가가 보았을, 그리고 내가 보았을 유자와라는 공간과 호흡하며 다시 읽는 소설은 이전의 읽기와 한 차원 다르게 읽힌다. 빛과 색채, 그리고 소리에 극도로 예민하고 감각적이기에 가능한 치밀한 풍경의 묘사가 현실을 넘어선 세상을 상징하는 산골 마을을 너무나 잘 표현해주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입체화된 공간에서 등장인물들이 붉은 혈색을 띄고 더욱 생생하게 살아남은 말해 무엇 하랴. 앞으로 열 번을 더 읽으라고 해도 나는 열 번 모두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유자와에서 사진으로도 만나지 못한 장면이 있다. 깊게 쌓인 눈 위에서 바래는 흰 모시 가득 아침 해가 비쳐 눈도 천도 모두 다홍빛으로 물드는 광경... 바로 흰 눈 위에서 겨우내 정성을 다해 짠 삼지지미천을 바래기하는 모습이다.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비록 우리의 현실은 겨울이라 할지라도 눈이 덮인 세상을 꿈꾸다가 흰 눈 위에서 다홍빛으로 물드는 하얀 모시천 같은 순간이 삶에 깃들 때, 나도, 그리고 당신도 그 순간을 깨닫고 부디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