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리뷰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2018-03-26
저자
출판사
리뷰자 황국현 (서정초등학교 교사, '소피책모임' 멤버)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로 이슈가 된 여성혐오, 이주 노동자 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 우리 사회에서 점점 더 확산되어가는 혐오란 무엇일까? 혐오라는 사회적 증상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고 그 역사적,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 SNS 상의 쏟아지는 증오와 악성 댓글, 과연 우리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인정하자’는 구호만으로 혐오를 극복할 수 있을까?
혐오나 증오를 사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만들어낸 원인을 논리적으로 규명해 쉽지는 않지만 함께 싸울 것을 엠케는 주장한다. 저자는 세계 분쟁지역을 수십 년간 취재하면서 각종 혐오 문제를 취재해왔고, 학문적인 훈련을 쌓은 균형감각을 지닌 저널리스트로 유명하다.   
사회적 불가시성, 누군가(소수 인종, 이주 노동자, 성소수자, 여성 등)를 보이지 않게 하고 존재하지 않는 듯 취급하게 만드는 원인과 위협적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원인들에 대해 저자는 하나하나 관련된 개념들을 정의하고 파헤치면서 다양한 사례들과 함께 분석한다. 
혐오라는 감정의 원인과 대상이 일치하지 않는 상태. 과연 우리 사회의 혐오는 표출(어쩔 수 없다면)에 있어 대상이 적절한 것일까? 혐오라는 감정의 근원적 문제(실업, 양극화 등)를 난민 또는 여성과 성소수자 등에게 전가하면서 이익을 얻는 집단은 없는 것일까? 근거 없는 걱정으로 포장된 혐오와 표와 상업적 이득을 위해 이러한 혐오를 이용하는 집단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들에 대한 위험한 진실 말하기를 저자는 동시대인들에게 호소한다. 

본문으로 들어가, 엠케가 보기에 혐오 현상은 크게 동질성, 본연성, 순수성에 기반한다.  
국가 또는 민족은 과연 동질적인 문화와 인종으로 구성되는 것이 더 나은 것일까? 엠케에 의하면 현대국가는 동질적인 문화, 민족이 이질적인 경우보다 근본적으로 낫다는 근거를 제시하기 보다는 동질적인 국가는 동질적이기 때문에 더 낫다는 동어반복에 그칠 뿐이다. 이러한 근거 없는 동질성 주장의 바탕 위에 사람들 사이의 시각적, 종교적, 성적, 문화적 차이는 단순히 사람이나 집단 사이의 차이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법률적 불평등을 초래한다. 이러한 차이는 차별과 배제의 메시지를 담고 ‘진짜’와 ‘가짜’를 만들고 포용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형성해 사람들을 분류한다. 이 분류를 통해 어떤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소속된 사람, 가치 있는 사람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열등하고 적대적인 이방인으로 판별된다.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 학벌주의 또한 진짜와 가짜를 그리고 소속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구분 짓고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하는 예 중의 하나가 아닌지 생각된다.
민족 또는 국가라는 공동체는 초기부터 사회를 하나의 신체로 상상하는 신체성의 개념으로 기술되었고, 신체를 상상하는 언어적 이미지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피부라는 경계를 연상하게 한다. 몸은 피부로 둘러싸인 하나의 단일체이며 의료의 맥락에서 사회적 맥락으로 넘어온 위생이라는 개념이 정치와 연결되면서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은 동질적인 공동체의 신체 건강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방인과의 접촉은 감염을 일으키며 이에 대한 공포는 동질성에 대한 병적 집착의 정체성을 생성하고, 다른 관습과 신념에 감염될까봐 두려워하게 된다. 그저 다른 몸과 만나는 모든 일은 곧 위협으로 여겨지고 기피할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표준이라는 그림자에 묻혀 정상적 다양성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숨게 된다. 
빠른 속도로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 또한 ‘우리’에 속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민족적 기원과 종교적 기원, 지역, 출신 학교나 학벌인지 공통의 행동이나 헌법, 숙의민주주의의 개방된 절차인지 고민해볼 일이다. 
또한 엠케는 ‘과연 민족이나 국가라는 유기적 단일성은 가능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제시한다. 원시공동체 이후 역사상 모든 현대 국가의 구성원들은 실제로 인종이나 문화, 혈통, 종교 보다는 그저 공통된 소속이라는 상상을 단지 더 많이 공유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 저자의 주장은 더욱 근거있어 보이고, 이는 우리나라도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해 보인다. 

두 번째 혐오의 기제인 ‘본연성’에 있어 저자는 ‘남성 또는 여성 외에 다른 영역에 속하는 성은 왜 존재하면 안되는 것일까?라는 문제 제기와 더불어 성별의 본연성에 대한 오개념과 트랜스인들의 개인적, 사회적 문턱에 초점을 맞추어 주장을 전개해 나아간다. 
트랜스인들이 성별이행(성전환)이나 호르몬을 투약하지 않고도 존재하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는 없는 것일까? 엠케는 성별의 ‘본연성’에 대한 오개념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엠케에 의하면 성별마다 본연의 특성이 있다는 생각은 기독교적 상상력을 통해 전승되었고 신의 뜻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표상과 결부된다. 신에 의해 창조된 자연스러운 존재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다른 모든 가변적인 것은 불건전하고 신의 의도치 않은 바람직하지 않은 존재로 규정된다. 
이러한 왜곡된 인식의 바탕 위에 트랜스인들에게는 개인적, 내적 어려움 뿐 아니라 행재정적, 의학적, 법적 어려움이 늘 뒤따른다. ‘정상성’에 대한 ‘비정상성’으로의 규정을 통해 트랜스인들은 정신의학적으로 장애를 지닌 병든 사람들로 구분되고, 이러한 규정은 이들에게 있어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요한 법적, 사회적 보호를 거두어가고 이로 인해 멸시와 폭력에 쉽게 노출된다. 이에 대한 연구 결과로 엠케는 2016년 시행된 ‘트랜스 살인 감시 프로젝트’를 제시한다. 이 프로젝트에 따르면 일반인에 비해 트랜스인들은 증오 범죄에 훨씬 많이 노출된다. 트랜스인들을 타자로 낙인찍는 ‘본연성’, 그 고정된 본성은 도대체 어떤 권위를 부여받은 것일까? 다른 모든 이들처럼 권리를 부여받고 국가에 의해 보호받으며 건강하고 활기차며 자유롭게 살아가면 안되는 것일까? 엠케는 이러한 트랜스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이들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배제되거나 무시된 사람들에게 권리와 자유를 쟁취하도록 그들만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무엇을 해나가야하는 것일까? 

자신들의 집단이나 이데올로기를 미화하고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전략은 자신들의 순수성을 주장하고 부각하는 것이다. 엠케는 그 대표적인 예로 IS를 꼽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순수성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교리나 강령에 부합되지 않는 무슬림들은 이단으로 규정한다. IS의 증오에 있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평등주의이다. 이들은 2등 시민 취급을 받는 무슬림들을 평등이라는 이름하에 아무 조건 없이 초대한다. 이러한 포용성이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어떠한 역사적 과업에도 참여할 수 없는 무슬림들을 빨아들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IS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테러를 가할 때 마다 무슬림들이 집단적 폭력과 복수에 노출되고 고립되어 IS로 향하게 하는 것은 정확히 IS가 꿈꾸는 분열된 유럽을 초래하는 것이며 이들의 순수 숭배를 후원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책의 결론부에서 저자는 미셸 푸코의 파르헤지아(진실 말하기)의 언급을 통해 우리 모두가 파르헤지스트, 즉 “당당히 나서서 폭군에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될 것을 주장한다. 푸코는 중오와 혐오, 광신주의에 대해 저항하는 방법으로서 인종적 혹은 종교적으로 비순수하고 비본연적이라고 범주화된,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들 모두를 보편적 우리에 속하는 개인들로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을 주장한다. 언어와 이미지로 왜곡되고 낙인찍힌 개인을 집단에, 그 집단을 속성들과 비하적 비난에 연결하는 모든 인식의 틀을 전복할 것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 스스로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파르헤지아(진실 말하기)에 당당히 나설 것을 호소하며 글을 마무리하는 저자의 외침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