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 이벤트
도서정가제 개악에 반대하는 전국 동네책방들의 성명서
2020-08-19

 

도서정가제 개악에 반대하는 전국 동네책방들의 성명서   

2020년 7월, 3년마다 재검토를 거치는 도서정가제 관련 법규에 대해 문체부는 오랫동안 민관협의체의 의견 수렴을 거쳐 결정된 합의안을 무시하고 갑자기 도서정가제 전면 재검토를 통보했습니다. 이에 전국 100여 곳의 작은 책방들이 함께하는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회장 정병규/이하 책방넷)와 뜻을 함께하는 단체들이 출판문화생태계가 흔들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도서정가제 개악을 막기 위해 아래의 성명을 발표합니다.

✔ 첫째,
거짓주장으로 소비자를 호도하여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려는 이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습니다!

2014년 개정된 현행 도서정가제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여러 부분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음에도 지난 해 일부 단체의 도서정가제 폐지 국민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한 청원 내용은 대부분 사실을 왜곡한 거짓 정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근거로 합의안을 무시하고 현행 도서정가제 재검토를 통보한 문체부와 거짓 정보를 유포하여 소비자들을 기만한 단체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원의 주요 주장을 살펴보면,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를 시행한 후 지역서점 수 감소, 출판사 매출 위축, 도서 초판 발행부수 감소, 평균 책값의 상승, 독서인구의 감소 등으로 출판 독서 시장이 망가졌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순수서점의 수는 1996년 5378개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여 년 동안 감소세였지만,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 이후 감소폭이 현저히 완화되었습니다. 이는 보다 강화된 도서정가제가 지역 서점의 생존 여건을 조금이나마 개선했다는 방증입니다. 무엇보다도 2015년 101개에 불과했던 독립서점은 2020년 650개로 대폭 늘어났습니다. 신생 출판사 또한 2013년 4만 4148개에서 2018년 6만 1084개로 증가했고, 신간 발행종수도 2013년 6만 1548종에서 2017년 8만 1890종으로 늘었습니다. 이처럼 서점과 출판사의 청년 창업이 늘면서 풍성한 책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2013년 2,331곳→2015년 2,165곳→2017년 2,351곳→2019년 2,312곳(서점조합연합회서점편람))
(독립서점 수는 2015년 97곳→2019년 551곳으로 증가(독립서점플랫폼퍼니플랜))
도서정가제 때문에 독서인구가 감소했다는 말에 대해서도 독자개발 조사보고서인 <읽는 사람, 읽지 않는 사람>(책의해 조직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 2018)에 따르면, 가장 큰 독서 장애 요인은 ‘시간이 없어서’(19.4%)이며, ‘책을 사는 비용이 부담스러워서’는 1.4%에 불과합니다. 문체부의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2020)도 대동소이한 내용을 담고 있어 독서인구 감소에 가격 요인이 크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현실적인 수치가 정확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증거 없는 거짓 정보로 소비자들을 호도하여 국민청원을 주도한 주최측과 이를 묵인하고 도서정가제 개악을 도모하는 문체부에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둘째,
책은 후대에 전승될 문화공공재이므로 ‘저렴한’ 가격이 아닌, ‘적정한’ 가격에 공급되어야 합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출간 직후 10% 할인과 5% 적립을 허용하여 여전히 온라인서점 쏠림현상을 낳고 있습니다. 더구나 온라인서점의 배송비 무료와 카드할인 역시 오프라인 서점들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완전한 도서정가제임에도 15%로 할인을 묶어둔 최소한의 안전장치 덕분에 전례 없는 독립서점들의 증가세와 그로 인해 나날이 풍성해지는 책 문화는 우리나라 출판생태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거짓 정보에 기반하여 할인율만 높인다면 결국 출판사들은 할인에 준하여 가격을 더 높이 책정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대형서점보다 비싸게 공급받는 도서들로 인해 하고 싶어도 할인을 할 수 없는 동네책방들이 당면한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기는커녕 지금의 정가제마저 무너뜨리려는 시도는 전국 동네책방들의 줄폐업과 양서를 펴내는 소규모 출판사들의 도산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정녕 지금의 민주 정부가 원하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전국 곳곳에서 만난 독자들은 싼 가격만으로 책을 구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은 콘텐츠를 담보한 책이라면 기꺼이 제값을 주고 사겠다는 많은 독자들이 도서정가제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9년 9월 성인 도서 구매자 2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도서정가제에 대한 긍정여론이 (59%) 부정여론보다(21%) 높았습니다. (국회 노웅래 의원 외 <출판문화 생태계발전을 위한 도서정가제 개선 방안 토론회> 자료집 25쪽)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문화 공공재입니다. 문화상품이기에 부가세가 면제되고 국가가 돈을 들여 도서관을 운영하며 출간된 모든 책들은 국립중앙도서관에 후대를 위해 보관됩니다. 그러므로 문화 공공재로서 책은 ‘저렴한’ 가격이 아닌, ‘적정한’ 가격에 공급되어야 하며, 책이 적정한 가격에 팔려야 책 생태계의 선순환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 셋째,
진정 소비자를 위하고 출판문화생태계를 살리는 완전도서정가제 실행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 36개 나라 대부분은 완전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세계의 도서정가제는 유럽의 출판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프랑스, 독일, 북유럽 대부분 나라들은 완전도서정가제가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책방이 문을 열면 이자 없이 10억 원 가량을 평생 대출해주고, 2014년에는 이른바 ‘반아마존법’을 시행하여 오프라인 서점에서만 정가의 5% 이내 할인과 무료배송을 허용하고, 온라인 서점에서는 일체의 할인을 금지하여 자국의 동네책방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일본 역시 강력하게 100% 정가제 구조를 유지하는데 저자, 출판사, 서점, 독자 모두 이에 불만이 없으며 동네책방을 지키기 위해 일부 대학에서는 대학 내에 책방을 열지 않습니다. 완전정가제를 실행하는 독일은 온라인서점과 동네책방에 제공되는 공급가격을 차별하지 않도록 국가가 관리하여 동네책방들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도서정가제를 없앤 후 온라인 서점들의 과도한 할인 경쟁으로 많은 출판사와 서점들이 문을 닫고, 출판 생태계가 붕괴 직전으로 몰리자 이제야 다시 도서정가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과거 중국과 같은 경험을 겪었음에도 출판생태계를 붕괴시키는 정책을 다시 반복하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어려운 현실 속에서 책을 만들고 책을 판매하는 출판계 수천여 곳의 소상공인들을 죽이고,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독과점에 더 힘을 실어주려는 잘못된 정책을 도모하는 것이 정녕 이 나라가 가야 할 길이 맞습니까?
수준 높은 독서문화와 건강한 출판생태계를 위해서는 대형서점과 동네책방 모두 공존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양서를 펴내는 출판사들과 지역 문화를 견인하는 개성 넘치는 책방들의 생존을 담보하여 풍성한 책 문화가 꽃피는 데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도서정가제가 흔들리면 힘없는 출판사들과 동네책방들이 가장 먼저 흔들립니다. 도서정가제가 사라지면 전국 수천여 책방들과 소규모 출판사들도 함께 사라집니다. 부디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어떤 결정이 현명한 선택인지 진지하게 자문해보시길, 그래서 힘겨운 현실에도 오늘도 책방 문을 여는 수많은 이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기를 다시 한번, 강력히 호소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전국 곳곳에서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며 새로운 책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전국 동네책방들은 생존을 위협하는 모순적인 정책 앞에서 더이상 침묵할 수 없어서 전국의 작은 목소리들을 모아 크게 외칩니다.

동네책방이 모두 사라진 세상, 그것이 진정 대한민국이 원하는 세상입니까?

이상, 성명서 발표를 마칩니다.

2020년 8월 19일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한국서점인협의회와 함께하는 대한민국 책방들 & (사)어린이도서연구회. 어린이문화연대. (사)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 전국북스테이네트워크. 한국그림책협회. 한국지역출판연대. (사)행복한아침독서 올림.